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츠라 고타로 (문단 편집) == 과거 == [include(틀:스포일러)] >'''"이걸로 됐어.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동료를 이끌면서 각자의 리더가 되면 되니까. [[사카타 긴토키|우]]리[[다카스기 신스케|들]]은 이 정도면 충분해. 내가 우리 셋이 함께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너희와 함께 웃을 수 있게 해줘. 모든 것을 잊고 너희와 함께 울 수 있게 해줘. 그저 [[친구|즈라]]로서-같이 싸우는 거다."'''[* 원작 564화의 과거 회상에서] 카츠라는 꽤 어릴 때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신 후, 가문의 당주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모종의 이유로 집도 몰수당해서 할머니와 함께 노숙생활을 한적도 있다고 한다.]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묘비 앞에서 할머니[* 성우는 [[아리카와 치에]].]는 어린 카츠라에게 "장수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다. 아무리 [[사카타 긴토키|일기당천의 실력]]이나 [[다카스기 신스케|교묘히 군대를 지휘할 지혜]]가 있어도, 장수가 목이 베이면 전쟁은 패하는 법. 그러니 장수는 가장 '''겁쟁이'''가 되고, 가장 두려워하더라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의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결국 천애고아가 된다. 영재로 소문나 다른 집에서 입양 될 수는 있었지만, 사무라이는 스스로를 키우는 것이라며 모두 거절했다. [[쇼요 선생]]의 제자가 되기 전부터 [[다카스기 신스케|다카스기]]와 명문 서당에 다녔다. 카츠라는 그 서당의 최고 신동, 다카스기는 최고 악동이라 불렸다. 그 서당은 엘리트 [[사무라이]] 계급 배출을 책임진 명문이었는데, 실은 [[고관대작]]이나 부자의 자녀들이 뒷돈을 찔러주고 입학해 신분을 세습하는 일종의 특권 계층 통로였다. 다카스기는 자신을 포함해 그런 기득권 2세 출신 서당 학동들을 한심하게 생각해 무시하며 주먹만 휘두르고 다니고 삐딱하게 굴었다. 한편 카츠라는 고아였지만 천재였기에 유일하게 재능만으로 전액 장학생으로 그 서당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힘 있는 집안 아이들은 카츠라를 무시했으나, 모두에게 삐딱한 다카스기는 카츠라에겐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사실 다카스기도 처음엔 카츠라에게 까칠하게 굴며 수업 농땡이를 쳤는데, 글을 읽고 배우고 싶어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가츠라의 말 이후 내심 이 녀석은 정신이 반듯해 친구로 삼을만하다 판단한 듯 하다. 카츠라라면 좋은 사무라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이후 주로 둘만 어울려 다녔다. 가츠라도 쇼요와 쇼요의 서당을 만나고 마음에 들었는지, 서당이 위험에 처하자 밤이 되기 전에 도망치라고 전해준다. 신스케와 둘이서 막부 관료들을 막을 작정이었으나, 긴토키가 합류한다. 긴토키는 우릴 도우면 돌아갈 곳이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가츠라 자신은 어차피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며 무사 계급이라는 직함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막부 관료들과 맞붙기 직전까지 가지만 쇼요에 의해 사건이 종결되고, 이후 신스케가 쇼요 선생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카츠라도 함께 쇼카손주쿠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다만 아직까지 작중에서 쇼요선생님과 대화하거나 접촉하는 모습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아 쇼요와 카츠라의 관계를 추측하기 힘들다.] 여러 일을 겪으며 가츠라와 다카스기는 둘 다 서당을 그만두게 된다. 다카스기는 진작 집안에서 찍힌지라 의절 당했고, 원래 서당에 부정적이었다. 카츠라는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게 아니면 사무라이 계급 따위 필요 없다며 그만둔다. 이후 이들은 쇼요 선생 제자가 되어 존경하며 따르며, 또래인 긴토키와도 절친이 된다. [[파일:attachment/가츠라 고타로/양이카츠라.jpg]] 후에 [[양이전쟁]]에 참전하여 대활약했다. [[사카타 긴토키|다른]][[다카스기 신스케|둘]]과 달리 공격보다는 아군을 지키는 수비형 전투를 선호한다.--그래서 별명이 도주의 코타로라고...-- 5기 오프닝에서 천인 여러명을 일도양단하는 모습이 나온 걸로 봐서 대단한 실력. 군을 이끌면서 필사적으로 천인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다카스기와 붙잡힌다. 그리고...쇼요로 인해 모이고 어린 시절 그를 유일한 스승이자 기둥으로 삼은 가츠라, 다카스기, 긴토키 셋은 쇼요의 최후를 함께 맞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참고로 [[사카모토 다츠마]]는 쇼요 서당 시절 서당 동료나 제자는 아니다. 카츠라 등 삼인방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대략 십대 중후반 정도로 추정. 사카모토는 일단 양이전쟁 당시 젊은 지도자 4인방으로 같이 맹활약한 전우지만, 쇼요의 제자는 커녕 쇼요와는 일면식도 없는 생판 남이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사카모토는 손(정확하게는 힘줄까지)을 다쳐 전선에서 이탈했고, 때문의 쇼요의 죽음에 대해서도, 쇼요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아는게 별로 없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긴토키와 신스케 모두 쇼요 선생에 붙들려 생각과 사상이 격하게 바뀐 것과는 달리, 카츠라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츠라도 쇼요 선생을 스승으로서 존경했으나, 긴토키나 신스케가 가진 감정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가츠라가 어디까지나 존경하는 스승님이라면 긴토키와 신스케는 쇼요를 아버지처럼 여겼기에 방향성이 좀 다르다. 오히려 얘 노선을 과격파→온건파로 바꾸게 한 것은 [[이쿠마츠]]였다(...). 다른 시각을 추가하자면, 카츠라는 오직 쇼요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신스케보다 동료들(긴토키, 신스케)에게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탓일 수도 있다. 긴토키와 재회하기 전엔 카츠라도 과격파 양이지사로 활동했으며, 긴토키가 없어진 5년 후 극장판에선 다시 온건파에서 과격파로 전향했다. 홍앵편에선 신스케를 직접 설득하러 가기도 했고, 비록 개그편이지만 신스케 [[코스프레]]를 한다던지 코타츠에 빨려가서 아저씨화가 된 상태에서도 신스케와의 결투는 어떡하냐고 묻는다던지 여전히 신스케에게 미련을 두는 모습을 보인다. 긴토키가 전혀 신스케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신스케 뿐만 아니라 긴토키에게도 미련을 두는듯 하다.] 전쟁 말기에 동료들이 모두 전멸당하고[* 다만 이 때가 453화에서 언급된 후미전 상황이라면 달라진다. 적의 지원병이 온다는 걸 알고서 긴토키와 카츠라가 뒤를 맡고 시간을 끌기로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병대마저 떠나보내고 둘이서 적을 막은 것. 453화에서 그려진 상황이 이 때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이 쪽이 맞을 듯 하다.] 긴토키와 단 둘만이 남아서 저항하다가 자결을 하려고 했지만 죽을 힘이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멋지게 살아보자는 긴토키의 의지를 듣고 그 상황을 돌파 할 수 있었다. 당시 살아남자고 한 긴토키의 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던 듯. 과거가 나올 때마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다. 어릴 적 쇼요 선생의 서당에서는 수업은 안 듣고 졸기만 하던 [[사카타 긴토키|이 녀석]]이나 집중 안하고 딴데나 쳐다보던 [[다카스기 신스케|이 녀석]]과는 달리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수업을 열심히 듣던 모범생이었고 양이전쟁 당시에도 항시 진지하고 곧바른 멋진 인물이었다.[* 어렸을때부터 긴토키와 타카스기의 폭주를 진정시키고 사천왕중 리더로써 양 군을 병합하여 이끌었다고 한다.][* 다만, 카츠라 본인은 그 시절 [[사카타 긴토키|두 명의]] [[다카스기 신스케|말썽꾸러기]]가 사고칠때마다 자신이 그걸 무마하고 수습했던 또 하나의 말썽꾸러기였다고 회상한다.] 또 과거에는 바보짓하는 동료들에게 [[츳코미]]를 거는 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본인이 [[보케]]가 되있다..?[* 덕분에 우스갯소리로 [[요시다 쇼요|선생님]]의 죽음에 가장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람은 [[사카타 긴토키|긴토키]]도, [[다카스기 신스케|신스케]]도 아니라 즈라였다는 농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